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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나는 하동 지역 환경단체인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의 기타 동아리인 '필!통기타'의 맴버이다. 어제는 드디어 우리 동아리에서도 자체 드럼주자를 두자는 의견이 나왔고 늘 드럼치기를 꿈꾸던 내가 드럼 주자로 뽑혔다. 3월부터 동네밴드의 드럼 담당자가 개인교습을 해주기로 했는데 마음이 바빠 오늘부터 당장 인터넷 뮤직필드에 등록하고 드럼 연습을 시작했다. 대학시절 북을 쳤던 경력이 있어 손목의 스냅이 원활하니 아마 잘할거야! 라고 자기 체면을 걸며 신나게 고무패드를 두드렸다. 필!통(우리 동아리를 줄여서 필통이라 한다) 동아리에서 기타는 제일 못치지만 왠지 드럼은 잘 할 수 있을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스스로 행복한 하루였다.
칠불사 아자방 뒤에 서 있는 키큰나무 위 새둥지를 보았습니다. 저 나무가 덜 외롭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이의 마음은 왠지 서글퍼집니다. 무딤이들판을 하얗게 덮은 눈길 위를 조심조심 미끄러지면서 두 그루 해송을 바라보았습니다. 언제나처럼 거기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이렇게 논밭에 내팽개쳐져 있는 짚단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할머니의 뒷모습에 카메라를 대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무수히 찍힌 차바퀴 속에 마음 한 자락 눕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눈에 덮혀 처연해 보입니다. 나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무수히 카메라에 담아보았지요.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되네요,
기가 상기돼서 며칠 어리벙벙했다. 몸이 안좋은 건지, 더 예민해진 건지 몸의 기운이 위쪽으로 올라가 얼굴에서 열이 나고 눈이 어리어리하고 머리가 집중이 안됐다. 콧물감기가 걸려서 집에서 한약을 다려먹었는데 그게 열 기운이 강한 거였나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조금 한 약초 공부를 실전에 적용해서 콧물감기는 잡았는데 이런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상기된 기를 가라앉히는 처방을 써야하는데 이러다 어찌되는 것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냥 한의원에 가는 건데 살짝 후회도 돼고. 이런, 쯧쯧...
단 한 번 만난 인연의 아가씨인데 친구와 함께 우리집에 와서 사흘을 머물다 갔다. 그 친구들 또한 안 지는 이 년이 넘었지만 만난 건 이번을 포함해 세번째인 인연이었다. 얼굴만 알다시피한 인연이었지만 결코 어색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도반처럼 편안했다. 나는 그 사흘 동안 몹시 바빠 낮 시간은 내 볼일로 시간을 다 보내고 첫날 밤과 마지막 밤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이틀 밤동안 우리 셋은 살아온 전 과정과 상대방의 정신 세계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십대, 삼십대까지는 이런저런 인연을 일부러 혹은 억지로 만들고자 애써기도 했지만 요즘은 일부러 인연짓고자 애쓰지 않는다. 있는 인연 챙기기도 쉽지않은데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고 에너지를 낭비할 여력이 없음이다. 이제 인..
신경림 시인의 시는 마치 시의 고전같다. 마지막 시집(절대로 이 시집이 마지막 시집이 아닐거라고 믿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 중 마지막 시집)인 [낙타]를 읽으면 세상을 오래 살고 이제 갈 날을 준비하는 자가 쓰는 시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마치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읽는 느낌이다. 낙타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
[의사 지바고]를 지금까지 읽지 않은 건 영화화 된 소설은 왠지 읽기 싫어서 였다. 그러다 어떤 소설가 지망생 중에 닥터 지바고를 읽고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는 말을 들었다. 그바람에 나도 언젠가 읽어봐야지 하고 벼루던 것을 이제야 읽게 된 거다. 난 너무나 차오르는 감동을 주최할 수 없어서 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던 소설가지망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학작품을 읽고 이토록 감동하기는 참으로 오랫만이다. 요즘은 왠만해선 좀체 쉽게 감동을 잘 안하게 된지가 오래된 것 같다. 감성이 무뎌졌는지 요즘 나오는 책들이 쉽게 감동을 일으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지바고는 작가의 분신이라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살아낸 삶은 내가 막연하게만 동경하던 혁명의 현장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금산 오세영 저 고해를 건너면 미타찰에 다다를까 빈 선창 가득히 달빛을 싣고 창망히 떠가는 달빛을 좆아 무심히 노를 젓는 가랑 배 하나, 누가 남해바다에 암벽과 초목으로 지어 한 척 배를 띄웠나 부처 하나 가슴에 안고 달빛 화안한 봄밤에 노를 저어 하늘을 간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창망히 떠가는 돛배 하나 23살에 보리암에 갔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던 세 명의 여성 전사는 보리암 밑에서 결의를 다졌다. 남해금산을 올랐던가, 걷고 걸어 보리암에 도착했던가,..
자주 가서 친근한 실상사에서부터 사찰 순례를 시작했다. 실상사 가는 길에 연밭이 있다. 연꽃은 필듯말듯할 때가 제일 좋더라. 연잎들이 층을 이루고 있었다. 못생긴 것 예쁜 것, 키가 큰 것, 작은것, 뚱뚱한 것, 날씬한 것, 다양해야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걸 연잎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꽃을 떨군 연밥(?)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조용조용 뭔가를 말하는 듯했다. 오래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야 들릴 얘기를. 맺힌 물방울이 꼭 눈물 같다. 실상사 입구 연못가에 상사화가 피었다. 몇 년 전, 이 상사화를 처음 본 날이 기억난다. 참으로 처연해 보였다. 나는 저 입구에서 늘 망설인다. 오래전 떠나간 친구의 뒷모습 같이 왠지 짠해진다. 한참 동안 서서 두리번거리다 돌아섰다. 실상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