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생활의 발견 (17)
나무야! 나무야!
우리 고향마을은 특별난 부자도 없고 특별히 가난한 집도 몇집 없는 고만고만한 평민들의 마을이었다. 대부분 집에 일소가 한 마리씩은 있었는데 몇 집만이 일소가 없었다. 다 고만고만해서 누가 못살고 잘사는지조차 구분할 줄 몰랐던 나는 나중에 커서야 일소가 없었던 집이 가난한 집이었다는 걸 알았다. 하나 둘 도시로 떠나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마을을 떠난 집들이 바로 일소가 없는 집들이었다. 마을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모두 소를 몰고 마을 한가운데 모이기 시작한다. 거의 다 모이면 일렬로 들을 향해 출발한다. 학원도 방과후수업도 없던 시절이었고 숙제를 많이 내주면 어른들이 학교에 항의를 했을 뿐 아니라 바쁜 농번기에는 학교에서 알아서 일찍 마쳐주기까지 하던 시절이어서 아이들도 나름 중요한 ..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라는 노래가 있듯이 들판 한 가운데 서 있는 저 두 그루 소나무가 없었다면 무딤이들판이 이렇게 멋지고 정겨울 수가 있을까요. 악양들판에서 본 평사리 뒷산입니다. 동양화의 한폭이지요. 무딤이 들판에서 본 축지마을 쪽입니다. 비오는 날 보니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사고가 나서 차를 현대정비에 맡기고 걸어보았습니다. 바로 그 앞에서 바라본 섬진강입니다. 사차선이 완성되면 이곳도 많이 변하겠지요. 같은 장소에서 조금 왼쪽으로 카메라를 돌렸습니다. 겨울철새들이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할 때가 다가옵니다. 내년에도 이곳을 찾아올까요? 다시 같은 장소에서 조금 왼쪽으로 옮긴 겁니다. 조금 더 왼쪽으로 옮기면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저렇게 묶여있는 재첩..
작은나무님이 울듯한 얼굴로 사정을 했다. 제발 우리 섬이새끼 좀 키워줘요. 섬이는 노산이라 힘들었는지 하루가 지나도록 배속의 새끼를 낳지 못하고 울어댔다. 이미 태어난 두 놈도 죽어버리고 겨우 배를 째는 수술을 통해 두 마리 새끼를 낳았다. 그러나 사고가 있었는지 작은나무님이 외출해서 돌아왔더니 수술한 부위가 찢어진 채 죽어가고 있더라는 거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다시 꿰맸는데 내장이 파열 된 것도 몰랐던 거다. 명백한 의료사고로 섬이는 죽어가고 있단다. 두 마리 새끼들은 죽어가는 엄마옆에서 몸을 비비대고... 어미한테서 떼놔야하기에 나한테 부탁하는 거였다. 바우가 집을 나가고 난 뒤에 당분간 개를 키우지 않으려고 하던 차여서 조금 난감했지만 하도 사정이 절박해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발바리 섬이와 ..
아이들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생명평화백대서원문 시디를 틀어놓고 절을 했다. 생명평화 서원을 한 마디 할 때마다 그 귀절을 명상하며 절을 올리는 것이다. 100대까지 못하고 50대까지만 했지만 아이들한테는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같다. 운동도 되고 명상도 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흔쾌히 하겠다고 해서 더욱 좋았다. 작은 아이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내친김에 윗몸 일으키기까지 하는 극성을 보였다.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는 방식은 여러가지다.
조용히 그저 묻힌 듯 살겠다고 시골 와서는 여전히 장소만 바꼈지 왁자지끌하고 바쁜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에 이사 와서 첫 일 년은 열심히 땅만 파며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예전의 모습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긴 나같은 인간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모였다 하면 일을 만들고 그러고나면 다시 일이 또 일을 만들어 끝없이 바쁘게 만든다. 늘 바쁘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사는데 뭔가 이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그렇게 바쁜 건가 자문해 본다. 어제는 내가 보기에 나보다 더 바빠 보이는 사람과 밥을 먹다가 물었다. 많이 바쁘지요? 그런데 그 분의 말씀이 난 안 바빠, 라는 게 아닌가? 아니, 바쁘잖아. 난 안 바빠. 갑자기 의아했다. 그런데 그 분의 요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니까 아..
연말이면 늘 세우던 한 해 계획도 없이 연말을 보냈다. 아직은 작년이라고 말하기엔 좀 어색한 2009년이 끝날 무렵,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 뭔가 열심히 계획을 세웠는데 도대체 그게 뭐였지, 했다. 그래서 2010년엔 그날 그날 열심히 사는 걸 목표로 삼지 뭐 하고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요즘 별 일 없으면 늘 아침에 일어나 시를 필사하고 있다. 그냥 읽는 것과 필사를 하며 천천히 음미하는 건 확실히 큰 차이가 있다. 새롭게 뭔가를 시작한다는 건 역시 재미난 일이다. 단어와 문장 속에 숨은 묘미를 찾아 읽으며, 시인의 숨결을 느끼고, 책상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감동이다. 아직 뭔가를 꿈꾼다는 건 늙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기쁘게 2010년을 맞이한다.
컴퓨터 켜기가 싫은 사람, 인터넷 들어오는 게 싫은 사람, 자기 블로그도 들어오기 싫어하는 사람. 나다. 11월 말부터 걸리는 병이 있는데 그 때부터 한 이주간 정신없이 바빠진다. 내게는 꼭 그 해 그 시기에 정리해야 할 일이 있다. 끝나고 나서는 이 지역 행사인 '동네밴드 겨울나들이'준비하느라 바빴고 또 그러고 나서는 텃밭에 고이고이 기른 배추를 뽑아다 늦은 김장을 하느라 바빴다. 그러고는 잠시 몸살을 했다.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몸으로 느낀다. 나이들수록 보수적으로 변하는 걸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몸이 먼저 처지니 마음도 따라 처지고 생각도 안주하는 쪽으로 기운다. 나이 들어서도 젊어서 가졌던 이상을 져버리지않고 살아갔던 혹은 살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경외심을!
이름이 그 사람을 바꿀 수도 있다. 나는 그 말을 믿는 편이다. 왜냐하면 내 이름에는 밝을 명자가 들어가는데 고모들의 말을 빌리자면 태어나면서부터 하도 울어대서 틀림없이 엄청난 성량의 가수가 될 거라 생각하면서 울지 말고 웃어라고 그렇게 지었단다. 그러나 타고난 성량에도 불구하고 박자치인 나는 노래에 영 자신이 없다. 게다가 성량마저 겨우 데모할 때나 사용했지 그다지 활용도 못하고 실제로 시끌벅적한 사람이지만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얘기하려고 너무나 노력한 나머지 차츰차츰 성량도 줄어들어 스무살 시절에 내가 일만팔천 군중 앞에서 마당극 속의 무당짓을 했다고 아무도 믿지 못한다. 어쨌든 밝을 명자가 내게 주었던 암시는 너무나 대단하여 나는 언제나 웃는 아이였다. 양 입가가 살짝 올라가도록 웃지않고 있었다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