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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 한 열흘쯤. 집을 비웠다 돌어오면 진짜 이 집의 숨은 주인이 누구인지 안다. 내가 없는 틈새 그들끼리 신나게 잔치를 열었다. 제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 아마 곰팡이균일거다. 붙을만한 곳에는 다 붙어 냄새까지 피운다. 여름이 오기전까지 예쁜 주황색을 유지하던 노각나무 열매도, 빨간 피라칸다 열매도, 고개를 빧빧이 들고 있던 수수이삭도, 까만 범부채씨앗도, 모두 삭아내렸다. 닫힌 창문 앞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던 열정도 저 작은 미생물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살아있는 내 몸도 언젠가는 흙속에서 저렇게 분해돼 나갈 것이다. 거미도 만만치않다. 벌써 몇세대가 영역을 구축하고 아름다운 건축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나는 숨은 주인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범법자가 된다. 나의 본질이 벌..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던 파블로 카잘스가 UN 총회장에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는 조국 카탈루냐를 짓밟은 파시스트 프랑코 정부를 인정하는 나라에서는 절대로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나는 카탈루냐 사람입니다. 카탈루냐는 지금은 에스파냐의 한 지방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공공장소에서 연주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 다시 연주해야 할 때임을 느낍니다. 나는 카탈루냐 민요를 들려주려 합니다. 새의 노래라는 곡입니다. (카탈루냐에서) 새들은 하늘을 날며 "피스(평화), 피스, 피스"라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는 바흐나 베토벤의 음악처럼 아름답습니다. 내 조국 카탈루냐 사람들의 영혼에서 길어올린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파블로 카잘스가 자신이 '에스파냐 사람'이 아니라 카탈루냐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데서..
며칠 집을 비웠더니 멧돼지가 옥수수밭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 우리집이 이사오기 전까지 멧돼지가 고구마밭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속상했다는 뒷밭 할아버지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정작 경험하기는 처음이다. 개들이 사라지고 사람도 없는 집을 어찌 그리 잘 알고 찾아왔는지. 옥수수를 분질러 줄기도 옥수수도 모두 갉아먹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옆에 있는 토마토나 고추, 대파, 피마자는 멀쩡하다. 멧돼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꼭 집어서 먹었나보다. 그나마 고맙다. 나는 갑자기 배고픈 멧돼지가 불쌍해져서 보고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들이 훼손한 먹이사슬 때문에 괜히 멧돼지만 애꿋은 말썽쟁이취급 받고 있으니, 우리집에서 난 맛있는 옥수수를 못먹게된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