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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비둘기 두 마리 소주를 마시네 검은 비닐 봉다리 속 찌꺼기를 안주 삼아 소복소복 눈은 쌓여가고 바쁜 걸음들 비틀비틀 지나는데 KTX 바람처럼 떠나는 서울역 앞 소주잔 속 시간은 더디기만 하네 비둘기 두 마리 소주를 마시네 남은 한 잔으로 오종종 가까이 있는 참새도 부르네 소복소복 눈은 쌓여가고 지친 구두들 저벅저벅 지나는데 셔터문이 하나 하나 내려지는 시간 소주로 데운 배가 수상해 서로의 깃털을 껴안고 머리깃을 부비네 날이 밝기까지는 햇살을 되찾기 까지는 아직은 서로운 비둘기
덜 깬 잠을 부비며 천자루 하나 들고 뒷산 꿀밤나무 밑으로 갔지 동갑내기 분숙이 부수수한 머리로 나타나면 잠이 확 달아나 버리고 날랜 손이 되어 동글동글 꿀밤을 줍지 게으른 다람쥐 그제야 우리와 날경쟁이지 밤새 떨어진 꿀밤은 순식간에 바닥나고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재잘거리면서도 내 귀는 꿀밤 잎사귀 톡 아침 공기를 가르며 꿀밤 떨어지는 소리 꿀밤나무 비탈 아래는 대나무숲 꿀밤은 자꾸 그쪽으로 숨어 떨어지지 다람쥐보다 작은 우리 손 그곳이 어디든 잠깐이면 찾아내지 나는 싫어라 했던 겨울밤 묵 한 판을 위해 가을 아침이면 꿀밤나무 아래로 내몰렸던 나 마흔이 넘어서야 겨울밤 묵 한 그릇의 참맛을 알았네 톡 서늘한 가을 아침, 내 맘의 대문 두드리는 소리 다람쥐야 어서 와 그 땐 내가 미웠지?
칠불사 아자방 뒤에 서 있는 키큰나무 위 새둥지를 보았습니다. 저 나무가 덜 외롭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이의 마음은 왠지 서글퍼집니다. 무딤이들판을 하얗게 덮은 눈길 위를 조심조심 미끄러지면서 두 그루 해송을 바라보았습니다. 언제나처럼 거기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이렇게 논밭에 내팽개쳐져 있는 짚단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할머니의 뒷모습에 카메라를 대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무수히 찍힌 차바퀴 속에 마음 한 자락 눕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눈에 덮혀 처연해 보입니다. 나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무수히 카메라에 담아보았지요.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되네요,
기가 상기돼서 며칠 어리벙벙했다. 몸이 안좋은 건지, 더 예민해진 건지 몸의 기운이 위쪽으로 올라가 얼굴에서 열이 나고 눈이 어리어리하고 머리가 집중이 안됐다. 콧물감기가 걸려서 집에서 한약을 다려먹었는데 그게 열 기운이 강한 거였나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조금 한 약초 공부를 실전에 적용해서 콧물감기는 잡았는데 이런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상기된 기를 가라앉히는 처방을 써야하는데 이러다 어찌되는 것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냥 한의원에 가는 건데 살짝 후회도 돼고. 이런, 쯧쯧...
조용히 그저 묻힌 듯 살겠다고 시골 와서는 여전히 장소만 바꼈지 왁자지끌하고 바쁜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에 이사 와서 첫 일 년은 열심히 땅만 파며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예전의 모습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긴 나같은 인간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모였다 하면 일을 만들고 그러고나면 다시 일이 또 일을 만들어 끝없이 바쁘게 만든다. 늘 바쁘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사는데 뭔가 이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그렇게 바쁜 건가 자문해 본다. 어제는 내가 보기에 나보다 더 바빠 보이는 사람과 밥을 먹다가 물었다. 많이 바쁘지요? 그런데 그 분의 말씀이 난 안 바빠, 라는 게 아닌가? 아니, 바쁘잖아. 난 안 바빠. 갑자기 의아했다. 그런데 그 분의 요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니까 아..
연말이면 늘 세우던 한 해 계획도 없이 연말을 보냈다. 아직은 작년이라고 말하기엔 좀 어색한 2009년이 끝날 무렵,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 뭔가 열심히 계획을 세웠는데 도대체 그게 뭐였지, 했다. 그래서 2010년엔 그날 그날 열심히 사는 걸 목표로 삼지 뭐 하고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요즘 별 일 없으면 늘 아침에 일어나 시를 필사하고 있다. 그냥 읽는 것과 필사를 하며 천천히 음미하는 건 확실히 큰 차이가 있다. 새롭게 뭔가를 시작한다는 건 역시 재미난 일이다. 단어와 문장 속에 숨은 묘미를 찾아 읽으며, 시인의 숨결을 느끼고, 책상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감동이다. 아직 뭔가를 꿈꾼다는 건 늙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기쁘게 2010년을 맞이한다.
두 마리 고양이 우리집에는 검은색과 갈색 무늬가 섞인 고양이 한 마리 있지 고양이를 집에 데려온 날에야 마당 앞을 휙 지나는 갈색 얼룩의 도둑고양이를 봤지 저 놈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영이네 고양이 나비의 일대 딸 나래는 병민이 집에 가고, 이대 딸 나야는 우리집에 왔지 '나야'는 집 고양이 도둑고양이는 '너야' 나와 너 사이 집 안과 밖의 차이 사료와 음식물찌꺼기의 차이 보호와 경계의 차이 '너야'는 집 주인의 눈 속을 본 다음날부터 대담해지기 시작했지 그래도 결코 집안으로는 들어올 수 없지 너는 '너야' '나야'는 집고양이 '너야'는 도둑고양이 '나야' '너야'
컴퓨터 켜기가 싫은 사람, 인터넷 들어오는 게 싫은 사람, 자기 블로그도 들어오기 싫어하는 사람. 나다. 11월 말부터 걸리는 병이 있는데 그 때부터 한 이주간 정신없이 바빠진다. 내게는 꼭 그 해 그 시기에 정리해야 할 일이 있다. 끝나고 나서는 이 지역 행사인 '동네밴드 겨울나들이'준비하느라 바빴고 또 그러고 나서는 텃밭에 고이고이 기른 배추를 뽑아다 늦은 김장을 하느라 바빴다. 그러고는 잠시 몸살을 했다.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몸으로 느낀다. 나이들수록 보수적으로 변하는 걸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몸이 먼저 처지니 마음도 따라 처지고 생각도 안주하는 쪽으로 기운다. 나이 들어서도 젊어서 가졌던 이상을 져버리지않고 살아갔던 혹은 살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경외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