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그 왕자, 바보 본문

시가 내게로 왔네

그 왕자, 바보

벽겸 2009. 8. 5. 20:53
가끔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휙 어떤 장면이 지나간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그런가 했더니 다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신기가 있나 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너무나 일순간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대부분 의미없이 끝나고 만다.
어제는 부산에서 하동으로 오는 차안에서 잠을 자볼까 싶어 눈을 감았더니
역시나 휙 한 장면이 나타났다.
절룩절룩 힘없이 걷고있는 불쌍한 한 남자.
안데르센 동화에나 나옴직한 가여운 왕자.
스쳐지나간 왕자를 떠올리자 시가 내게로 왔다.

 

그 왕자, 바보


그 왕자,

홀로 산길을 걷네

바보인 왕자는 걸음걸이도

어정어정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

왕자의 칼은 무딘 나무 칼

왕자의 갑옷은 녹말로 지은 옷

신발도 없네

사냥을 못하는 그 왕자,

배가 고파

굶주림에 눈 멀었네

환한 보름달을

베어물고

왕자, 그만 늑대가 돼 버렸네

우우우~

늑대가 된 그 왕자,

미쳐 팔딱팔딱

뛰네

그래, 그거야 그거

모두 박수를 치네

난생 처음 박수를 받은 왕자,

꼬리를 높이 치켜세우고

허리를 꼿꼿이 한 채

두 발로 걷기 시작했네

사람들 환호하네

그 왕자, 더이상

왕관도 갑옷도 찾지 않고

보름달만

덮썩 덮썩

베어무네

  2009년 8월 4일

'시가 내게로 왔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고속도로  (0) 2009.09.17
어떤 날  (0) 2009.09.17
낙뢰  (0) 2009.08.31
사찰순례길에서  (2) 2009.08.05
자벌레 여자  (2) 2009.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