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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네

자벌레 여자

벽겸 2009. 8. 5. 07:46

시라는 걸 잘 모른다.
내겐 시가 어렵고 두렵게만 느껴졌다.
시란 가까이 가고 싶어나 너무 먼 당신이었다.
하동 악양에 지리산학교가 생겼다.
이참에 내게 너무 먼 당신인 시를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이란 이해에서 시작한다고 믿고
더 잘 이해하고 즐기고 싶어 시문학반에 등록했다.
감히 시를 쓴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시문학반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참 시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됐다.
시란 그렇게 먼 당신도 아니고
내 옆에 존재하는 사물들처럼,
일상처럼,
모든 것 속에,
언제나
숨어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나도 일기를 쓰듯 시를 쓸 수 있겠군.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로 시가 내게로 걸어왔다.(이게 네루다의 싯구절이었던가?)
난 시인이 아니니 잘썼다 못썼다 평가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평가를 해주고 도움을 준다면 달게 받지요.)
사소한 일상에 숨어있는 시를 찾아 재현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뿐.
가까이 있는 시를 내 삶의 옆자리로 모신다고 할까?
자, 이제 내 생활의 한 부분을 시로 옮겨볼게요.
나의 이웃님들 그 속에 진정성이 느껴지나 찾아 보세요.


시문학반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쓴 시는 자벌레 이야기입니다.
차를 몰고 가는데 앞 차창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자벌레를 보았습니다.
아마 나무 그늘에 차를 세워두었을 때 그 위에 떨어졌나 봅니다.
달리는 차창 위, 땡볕 아래 몸부림치는 자벌레를 보면서 마치 내 모습,
아니 우리들 모습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벌레 여자

플라타너스 가지 끝에 있던

자벌레 한 마리

차창 앞면에 떨어진다

한 자

두 자

세 자

걸음을 옮긴다

잎의 느낌도

나뭇가지의 촉각도

흙의 감촉도 아닌

미끄럽고 딱딱하고 눈부신 짐승인가

부르릉

소리와 함께

서늘했던 초록 멀어지고

바람 휙휙 지나가고

폭염은 자글대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지친 몸뚱이 치켜 올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대지만

들끓는 열기뿐

갈 곳이 없다

한 글자

두 글자

세 글자

움츠렸다 펴 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어디인가

투명한 장벽 넘어

핸들을 쥐고 있는

지친 얼굴의 한 여자

그녀는 길을 알까


                             9년 7월 10일 씀


다음 시는 진주 가는 기차 안에서 기차의 선로를 보자  다가온 시였어요.

강은 산을 뚫지 못하고 산은 강을 넘지못한다는 백두대간의 거리 개념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과 결합시켜 보았습니다.

               길

곧고 휘어지고 녹이 슨

오래된 기억 같은 것

스치는 풍경마다

살냄새가 묻어난다

강을 넘지 못하는 산

마음 담아

긴 몸트림 시작이다

크-윽 크-윽 크-윽

너 울고 있니?

마음결 흐르는 강

속울음 숨길 수 없네

이 길에서 나 그만 내리고 싶어

길고 긴 시간의 굴레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선로

곧고 휘어지고 녹이 슨

           9년 7월 20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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