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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정신없이 차작업을 하다가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 차작업 초반에는 찻잎이 안 올라와서 동동거렸는데 이제 잎이 쑥쑥 올라오는 이즈음 벌써 작업을 접어야한다. 우리 아들이 있는 실상사 작은학교 학부모 당번하러 칠박팔일을 갔다와야하기 때문이다. 찻잎이 늦게 나오는바람에 작업을 많이 못하고 접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런데 문제는 내 체질이 바껴버렸다는 거다. 낮에는 차를 따고 밤에는 차를 덖고 하다보니 보통 새벽 한시를 넘기곤 했다. 평소엔 저녁 아홉시만 되면 하품을 하기시작하는 내가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으니 ... 아홉시만 되면 하품을 하는 날이 멀잖아 돌아올 것이다.
섬진강변에서 먼저 오른 연두빛이 이제 점차 녹색으로 변해가고있는 이즈음 우리집 언덕으로 연두빛이 번져오고 있다. 먼저 물오른 나무는 연둣빛이 진하고 이제 물오르는 나무는 아주 연한 연두빛으로 세상과 인사한다. 비온 뒤끝에 남은 약간의 먹구름이 있어도 맑고 서늘한 날이다. 밀과 보리가 초록으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깨끗해진 들판을 보니 마음이 개운해진다. 비닐하우스 없이 사철 변화하는 들판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이곳에 와서 알았다. 어제 처음으로 녹차를 땄다. 정말 많이도 늦된다.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 겨우 400그램이다. 너무 적은 양이라 솥에 덖는 것도 손으로 비비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도 차를 따고 덖고 비비는 일이 내게는 수행처럼 생각된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자 자신을 ..
녹차밭에 풀을 맨다고 며칠 매달렸더니 얼굴이 몇군데 울퉁불퉁하다. 벌써 날벌레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풀도 날벌레도 땅속 벌레도 모두 난리가 났다. 내 눈에 잘 안보이는 뭇생명들이 더불어 잘 살고 있는 흙을 파헤치니 어쩔건가 미안해 미안해 그러면서 나는 또 풀을 맨다. 근질근질한 땅을 긁어준다.
시인 이원규 선생님이 내게 필명을 지어주셨다. 본격적으로 시를 공부해 보겠다고 필명을 지으려 했다는 내막을 듣고는 당신이 지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사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했을 때 고마웠지만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걸 받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까봐 못들은 척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 뒤에 또 이름을 지어주겠다며 생년월일과 한자 이름을 적어달라고 아주 진지한 자세로 말씀하시는 거였다. 근데 선생님, 마음에 안들면 어떡해요? 그건 그 때 문제고, 일단 생년월일하고 한자 이름 적어봐요. 그러면서 종이를 내미는 거였다. 그런지 한 달 쯤 지났나? 고민을 많이 했나 보다. 어제 지리산학교 시문학반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붓펜으로 쓴 종이 한 장을 내밀어 주셨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鄭名姬님께 ..
맑은 하루였다. 따사로운 가을볕을 등지고 앉으니 마음과 몸이 다 따뜻해졌다. 간단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데도 자꾸자꾸 미루다 마음만 바빠지는 듯해 오늘은 날잡은 모양으로 종일토록 하나하나 일을 처리해나갔다. 표고버섯 딴 것 말리고, 모과 납작납작 썰어 말리고, 건도라지 말리던 것 마저 햇볕에 내 놓고, 쑤세미 삶은 것 껍질 벗겨 말리고... 그러고 보니 해님에게 여러가지로 은혜를 받고 있다. 해님 감사! 그러는 틈틈 오랫만에 블로그에 들어와 시도 두 편 옮기고, 내가 즐겨찾는 싸이트 들어가 밀린 글도 읽고, 틀어놓은 들깨를 체에 쳐서 두 되 정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저녁무렵에는 미루고 미루던 양파 모종도 심고, 절여서 씻어놨던 갓김치도 담고, 아, 정말 일 많이 했네. 게다가 이웃 택배부쳐주는 볼일도 봐주..
남편이 들깨 기름을 하루에 한숟가락씩 먹어대니 들깨농사를 아니지을 수가 없었다. 다행이 들깨는 거름을 안해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약을 안해도 수확할 수 있다. 비록 잎은 벌레 때문에 생으로 먹기가 좀 그래도 들깨수확에는 큰 지장이 없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면 당연히 심을 때와 거둘 때를 알아야 하는 법인데, 남들 다 심고나면 그제야 부랴부랴 심고 남들 다 수확을 끝내고야 이제 수확한다고 뒤늦게 바쁘니, 나도 내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가 많다. 실컷 심으면 뭐해 수확시기를 놓치면 심느라고 고생한 것만 억울하지. 들깨를 지난주나 지지난주에 벴어야 됐나보다. 반은 익어서 씨앗이 저절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고 한심해라. 속으로 혀를 차며 오늘 거의 종일토록 들깨를 벴다. 바닥에는 이미 들깨가 반쯤은 쏟아져 있어..
큰 아이를 대안중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제출해야할 서류가 많다. 그 중 하나가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다. 그 책은 몇 년 전에 우리집에 왔지만 그동안 책꽂이에서 가만히 잠자고 있다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미 그런 류의 책들을 제법 읽었기 때문에 내용이 새롭다기 보다는 나 자신을 다시금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다시 아이로 태어나서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이상 나는 자라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자기성찰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언제나 잠들기 전에 아이들을 앞에 혹은 옆에 끼고 들려주던 책읽기 시간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
큰 아이가 감기에 걸리자 신종플루일지 모른다고 자꾸 검사를 해보잔다. 자꾸 그러니 신종플루와 증상이 다르다면서 큰소리 치지만 속으로는 나도 슬그머니 겁이났다. 그러면서 뭔가 좀 의심스럽고 억울한다. 온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고있는 언론의 역할에 뭔가 숨은 의도가 있는게 아닌가 싶고 너무 과한 반응이 아닌가도 싶고 백신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안정성도 심히 의심스럽고 그걸 통해 뭔가 이익을 누리는 집단이 따로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던 차에 아래 기사를 읽고는 공감하는 바가 많아 옮긴다. [전문기자 칼럼] 돼지독감 백신의 비극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1976년은 미국이 돼지인플루엔자로 한바탕 대소동을 치른 해이다. 시작은 이렇다. 그해 2월 미국 뉴저지에 주둔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