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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어쩌다... 우연히 검색을 하다 검색을 따라 티스토리를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보니 자연스럽게 내 아이디로 안내가 되었다. 잊어먹고 있었다. 티스토리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지난 글 읽어보니 새삼 재미있다. 가끔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되겠구나 싶어 가능하면 가끔 들어와 글을 쓰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지킬 지에 대한 자신이 없다. 세월만 흐른 게 아니다. 내 영혼도 그만큼 성장했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고 그런 내가 좋다. 그럼 된 거 아닌가? ㅎㅎㅎ. 좋다.
크고 오래된 나무를 조사 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좋아서 제안하고 생태해설사회 회원들과 같이 하고 있다. 어제도 회원 한 명과 나무를 찾아 산을 올랐다. 가시 넝쿨이 우거진 곳은 낫으로 치면서 오르느라 저녁이 되니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같이 간 회원은 차가 없고 한동안 백수로 지냈던 덕분에 구석구석 산자락을 많이 헤매고 다녔단다. 그래서 악양 곳곳의 큰 나무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한 나무는 거의 산 중턱에 있었는데 갈 때부터 나무 상태가 안좋아서 죽었을지 모른다더니 결국 죽어 있었다. 죽은 나무 둥치 아래에는 버섯이 수북하게 피어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야생 느타리 버섯 같은데 그친구는 계속 느타리버섯을 닮은 버섯이고 독버섯일테니 먹지 말라고 했다. 조금 떼어 먹어보니 역시나 ..
약간의 황사는 있었지만 오랫만에 맑은 날씨였다. 잘못된 날씨 정보로 오늘도 비가 오는 줄 알고 녹차를 안따고 이 일 저일 밀린 일을 하는데 아니, 비는커녕 자꾸만 날씨가 맑아지는 게 아닌가. 이럴수가. 녹차를 땄어야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할 수 없이 남들 다 바빠 정신없는 시간에 나는 물오른 나무들을 탐색하며 악양 이곳저곳을 돌았다. 우리 딸 산하의 표현을 빌자면 죽어가는 나무에 새로운 영혼이 태어나는 것같은 연둣빛 황홀경에 빠진 하루였다. 연둣빛도 참으로 다양해서 저절로 봄단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단풍이라는게 가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다 아주 맑은 영혼을 가진 비구니스님 한 분을 만나 태워드렸는데 놀랍게도 스님의 토굴에는 전기가 없었다. 전기가 없으니 일체의 가전제품도 없었..
신경림 시인이 4대강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나서 했다는 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4대강사업은 역사의 천벌을 받을 사업이다. 이를 그냥 지켜만 보는 것도 천벌을 받을 일이다!” 나와 같은 생명체가 저지르는 살육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들으며 느끼는 이 무력함과 치떨림이 부끄럽다. 살아있다는 게 죄스럽다. 산수유가 봄이 오는 걸 알리고 매화가 피고 질 즈음 물앵두나무가 꽃을 피우다 며칠만에 금방 져버리고, 살구 꽃이 피었다. 그도 얼마 못가서 이제 벚꽃이 만개했다가 꽃비되어 날리고 있다. 자두나무와 배나무, 조팝나무 꽃이 하얗게 절정을 이루자 돌복숭과 앵두나무가 꽃분홍빛을 흐드리고 뒤늦게 얼굴 내민 복숭아 꽃도 덩달아 웃음짓는데 땅 가까이에선 수선화가 피고 지고, 작으나마 저도 있다고 향기 피우는 향기부..
팔순을 이 년 앞둔 퇴임한 신학교수로 부터 혁명가 예수 이야기를 듣고 왔다 예수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동정녀에게서 나지도 않았고 하느님을 야훼라 부르지도 않았고 예수의 몸은 부활하지도 않았다. 예수가 말한 하느님 나라는 예루살렘이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거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따로 없는 만인이 평등한 세상이다. 그런 나라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맞이하기 위해 투쟁해야한다고 예수는 설법한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현자였고 수없이 많은 혁명가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예수 이전에도 예수 같은 존재는 있었지만 기독교는 그 진실을 덮어둔다. 이스라엘의 민족 신인 야훼는 타민족에게는 배타적이고 무자비한 존재로 작용했기에(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하듯이) 예수는 야훼..
한 10년 쯤만에 옛 친구를 만났다. 젊은 시절 한 때 이념을 같이 하고 삶을 같이 했던 친구다. 친구는 그놈의 동지라는 것 때문에 지질이 고생할 걸 막연히 예감하면서도 차마 떨치지 못한 채 결혼의 굴레로 들어갔다. 역시 예감했던 대로 사고만 치는 남편 뒷처리에다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팍팍한 삶이 친구의 등을 휘게 만들었고, 동지니, 이념이니 하는 말은 까마득한 추억의 책갈피로 접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물었다. 기분이 어떻노? 무얼 묻는지 알았지만 담백하게 대답했다. 오랫만에 옛친구를 만나서 반갑고, 어렵게 사는 걸 보니 안타깝고, 그렇지 뭐. 옛날에 그 친구가 즐겨부르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결국 그시절 우리가 추구한 이념이 삶 따로 이념 따로인 것이었구나 싶..
지난 주말을 이용해 딸아이와 둘이서 일박 이일 여행을 했다. 멀리 상주까지 갔는데 학교 수업을 빼먹고 가자는 엄마의 꼬시킴도 통하지 않는 범생이 딸 때문에 도착하자 곧 저녁이 되었다. 원래 예정에 없었던 갑장사라는 절에 가게 되었는데 걸어가는 시간이 40분 이상 걸리는 곳인데다 그 아래는 민박지가 없어서 시내에서 잠을 자고 들어가야한다기에 절에 전화를 걸어 하룻밤 재워줘야 그곳으로 갈 수 있다고 협박(?)반 사정반 했더니 그러라고 했다. 막 절에 도착하니 황홀한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너무 예뻐서 사진을 몇 장 찍으려는데 공양주 보살님들이 예불시간이라고 은근히 참여하길 권했다. 예의가 바른 나는 비록 불자가 아니지만 예불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스님과 신도가 함께 염불을 외우는데 그저 할 줄 아는 것..
어제 저녁에 '섬진강과지리산사람들' 사랑방인 풍악재에서 도법스님과 우리 회원들이 둘러앉아 대담을 나눴다. 요즘 스님이 하고 있는 지리산 성역화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스님이 살고 있는 남원시 산내면 사람들 이야기와 악양에 살고 있는 우리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2 화살을 맞지마라는 이야기였다. 스님은 아주 생생한 사례를 잘 들었는데 가령 이런 것이다. 예쁜 꽃을 보면 누구나 아, 예쁘다, 아름답다, 라고 생각한다. 이게 제 1화살이다. 누구나 제 1 화살은 맞는다. 거기서 끝나야 하는데 그만, 이 예쁜 꽃을 내가 가지고 싶다까지 나아가면 이게 바로 제 2화살을 맞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깨친 자와 아닌 자의 차이다. 제 2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