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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네

꿀밤 떨어지는 소리를 듣다

벽겸 2010. 1. 12. 12:45

덜 깬 잠을 부비며

천자루 하나 들고

뒷산 꿀밤나무 밑으로 갔지

동갑내기 분숙이 부수수한 머리로 나타나면

잠이 확 달아나 버리고

날랜 손이 되어 동글동글

꿀밤을 줍지

게으른 다람쥐

그제야 우리와 날경쟁이지

밤새 떨어진 꿀밤은 순식간에 바닥나고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재잘거리면서도

내 귀는 꿀밤 잎사귀

아침 공기를 가르며 꿀밤 떨어지는 소리

꿀밤나무 비탈 아래는 대나무숲

꿀밤은 자꾸 그쪽으로 숨어 떨어지지

다람쥐보다 작은 우리 손

그곳이 어디든 잠깐이면 찾아내지

나는 싫어라 했던 겨울밤 묵 한 판을 위해

가을 아침이면 꿀밤나무 아래로 내몰렸던 나

마흔이 넘어서야 겨울밤 묵 한 그릇의 참맛을 알았네

서늘한 가을 아침, 내 맘의 대문 두드리는 소리

다람쥐야 어서 와 그 땐 내가 미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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