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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

봄단풍

벽겸 2010. 4. 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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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황사는 있었지만 오랫만에 맑은 날씨였다.
잘못된 날씨 정보로 오늘도 비가 오는 줄 알고
녹차를 안따고 이 일 저일 밀린 일을 하는데
아니, 비는커녕 자꾸만 날씨가 맑아지는 게 아닌가.
이럴수가. 녹차를 땄어야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할 수 없이 남들 다 바빠 정신없는 시간에 나는 물오른 나무들을 탐색하며
악양 이곳저곳을 돌았다.
우리 딸 산하의 표현을 빌자면
죽어가는 나무에 새로운 영혼이 태어나는 것같은 연둣빛 황홀경에 빠진 하루였다.
연둣빛도 참으로 다양해서 저절로 봄단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단풍이라는게 가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다 아주 맑은 영혼을 가진
비구니스님 한 분을 만나 태워드렸는데 놀랍게도 스님의 토굴에는 전기가 없었다.
전기가 없으니 일체의 가전제품도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물을 냉장고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촛불을 잘 모으기 위해 재활용 종이상자에 은박지를 둘렀고,
숟가락, 젓가락 하나에 방 하나, 군불때는 부엌하나
부엌을 반잘라 만든 식탁.
방에는 열네 살 때쯤의 부처님 초상화 사진 한 점이 걸려있었는데
내 손바닥 두개를 합한 크기쯤 했다.
악양에 산 지 십오 년쯤 되는데
일 년에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은 서너 번쯤 밖에 안되어 악양 안에서도
스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단다.
홀로 조용히 참선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살고있었다.
그런 삶이 가능했다.
하지만,
세상이 온통 난린데 세상 일에 눈감고 그렇게 수행만 하는 게
개인적인 구도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도 싶으면서
한편 그래도 긍정적인 기운을 세상에 불어넣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수행자의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도 싶었다.
봄단풍에 빠져서 이판승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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