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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아들이 있는 실상사 작은학교에 학부모 당번 때문에 와 있다. 지난 주 토요일에 들어와서 이번주 토요일에 나간다. 학부모 당번이 하는 일은 아침 여섯시에 식사당번을 맡은 학생들을 깨워서 식사 준비를 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일곱시 반까지 나머지 학생들을 깨워 같이 산책을 가든지 운동을 하든지 요일에 따라 정해진 아침 운동을 한다. 아침 공양 뒤에는 뒷설거지까지 아이들이 깨끗이 하도록 시킨다. 그런 뒤에는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할 수도 있고 이런 저런 소일거리가 있으면 맡아서 한다. 아침식사는 아이들이 하고, 점심식사와 저녁식사는 공양간 선생님이 하지만 뒷설거지는 식사당번 아이들이 한다. 저녁 식사 전에는 간식이 있는데 간식은 생협 과자, 떡, 빵, 과일 등이다. 빵이나 쿠키는 제과제빵 동아리 아이들이 ..
만화 '식객'에 보니 애인이나 마누라한테도 비밀로 하고 먹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옻순이다. 두릅순, 음나무순, 참죽순, 죽순 다 먹어보았지만 옻순을 먹어본 적이 없는 나는 몹시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애인한테도 숨기나. 그 이야기를 같이 차작업하는 스님에게 했더니 스님집에 있다면서 순을 따주는 게 아닌가? 애인도 마누라도 아닌데 이렇게 고마울수가! 혹시 옻이 오를까 약간의 주저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귀한 것을 아니 먹을 수가 있나. 스님 말에 의하면 초장이 아니라 고추장에 들기름을 친 장을 만들어 찍어먹어라는 거였다. 그걸 들기름고추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어쨌든 참 고소하고 맛있었다. 옻순의 맛에 대해 말하자면 글쎄, 맛있긴 했지만 즉시 데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점심시간에 먹어라 해서 먼저..
정신없이 차작업을 하다가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 차작업 초반에는 찻잎이 안 올라와서 동동거렸는데 이제 잎이 쑥쑥 올라오는 이즈음 벌써 작업을 접어야한다. 우리 아들이 있는 실상사 작은학교 학부모 당번하러 칠박팔일을 갔다와야하기 때문이다. 찻잎이 늦게 나오는바람에 작업을 많이 못하고 접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런데 문제는 내 체질이 바껴버렸다는 거다. 낮에는 차를 따고 밤에는 차를 덖고 하다보니 보통 새벽 한시를 넘기곤 했다. 평소엔 저녁 아홉시만 되면 하품을 하기시작하는 내가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으니 ... 아홉시만 되면 하품을 하는 날이 멀잖아 돌아올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오지 않아 밖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집 뒤쪽에 있는 녹차밭에서 녹차를 따시던 할머니 한 분이 큰 소리로 말했다. "호랭이 온다 퍼떡 가자" 녹차를 따는 사람에게도 만드는 사람에게도 비는 호랑이가 맞다. 비가 오면 녹차 일은 땡이다. 야생화 농원에 가서 꽃을 몇 가지 샀다. 노루귀, 섬노루귀, 하늘매발톱, 패랭이, 노루말발, 파라솔, 꽃양귀비... 꽃밭에 풀을 뽑고 사온 꽃을 심었다. 같은 초본인데 어떤 것은 뽑혀나가고 어떤 것은 돈을 주고 사와서 심는다. 그러는 내가 우습다.
약간의 황사는 있었지만 오랫만에 맑은 날씨였다. 잘못된 날씨 정보로 오늘도 비가 오는 줄 알고 녹차를 안따고 이 일 저일 밀린 일을 하는데 아니, 비는커녕 자꾸만 날씨가 맑아지는 게 아닌가. 이럴수가. 녹차를 땄어야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할 수 없이 남들 다 바빠 정신없는 시간에 나는 물오른 나무들을 탐색하며 악양 이곳저곳을 돌았다. 우리 딸 산하의 표현을 빌자면 죽어가는 나무에 새로운 영혼이 태어나는 것같은 연둣빛 황홀경에 빠진 하루였다. 연둣빛도 참으로 다양해서 저절로 봄단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단풍이라는게 가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다 아주 맑은 영혼을 가진 비구니스님 한 분을 만나 태워드렸는데 놀랍게도 스님의 토굴에는 전기가 없었다. 전기가 없으니 일체의 가전제품도 없었..
섬진강변에서 먼저 오른 연두빛이 이제 점차 녹색으로 변해가고있는 이즈음 우리집 언덕으로 연두빛이 번져오고 있다. 먼저 물오른 나무는 연둣빛이 진하고 이제 물오르는 나무는 아주 연한 연두빛으로 세상과 인사한다. 비온 뒤끝에 남은 약간의 먹구름이 있어도 맑고 서늘한 날이다. 밀과 보리가 초록으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깨끗해진 들판을 보니 마음이 개운해진다. 비닐하우스 없이 사철 변화하는 들판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이곳에 와서 알았다. 어제 처음으로 녹차를 땄다. 정말 많이도 늦된다.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 겨우 400그램이다. 너무 적은 양이라 솥에 덖는 것도 손으로 비비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도 차를 따고 덖고 비비는 일이 내게는 수행처럼 생각된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자 자신을 ..
작년 같으면 지금쯤 차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을 시기인데 아직 차작업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날씨가 차서 찻잎이 늦어도 한참 늦된다. 오늘은 오전 내내 풀을 뽑았다. 하늘이 내가 뒷밭을 다 맬 동안 기다려준 것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비가 오니 아랫집 언니가 불러서 오랫만에 아랫집으로 나들이를 갔다. 언제나처럼 우리의 화제는 기후변화에 따른 걱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랫집 언니는 작년에 있었던 대만의 태풍 피해 사례를 들먹이며 올해 우리나라에 예정돼 있는 심각한 태풍예보를 얘기했다. 안그래도 심상찮은 기온의 변화에 민감해져 있던 나는 오싹 두려움을 느꼈다. 농사란 사람과 하늘이 함께 하는 일이라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곳곳에 재앙을 부르는 짓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니 오호통재라!
신경림 시인이 4대강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나서 했다는 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4대강사업은 역사의 천벌을 받을 사업이다. 이를 그냥 지켜만 보는 것도 천벌을 받을 일이다!” 나와 같은 생명체가 저지르는 살육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들으며 느끼는 이 무력함과 치떨림이 부끄럽다. 살아있다는 게 죄스럽다. 산수유가 봄이 오는 걸 알리고 매화가 피고 질 즈음 물앵두나무가 꽃을 피우다 며칠만에 금방 져버리고, 살구 꽃이 피었다. 그도 얼마 못가서 이제 벚꽃이 만개했다가 꽃비되어 날리고 있다. 자두나무와 배나무, 조팝나무 꽃이 하얗게 절정을 이루자 돌복숭과 앵두나무가 꽃분홍빛을 흐드리고 뒤늦게 얼굴 내민 복숭아 꽃도 덩달아 웃음짓는데 땅 가까이에선 수선화가 피고 지고, 작으나마 저도 있다고 향기 피우는 향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