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69)
나무야! 나무야!
녹차밭에 풀을 맨다고 며칠 매달렸더니 얼굴이 몇군데 울퉁불퉁하다. 벌써 날벌레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풀도 날벌레도 땅속 벌레도 모두 난리가 났다. 내 눈에 잘 안보이는 뭇생명들이 더불어 잘 살고 있는 흙을 파헤치니 어쩔건가 미안해 미안해 그러면서 나는 또 풀을 맨다. 근질근질한 땅을 긁어준다.
한때 나는 푸른 강에 있었다 참 이상하다 버들강아지 아직 저렇게 탐스럽다니 앙상한 가지들 그대로 영영 눈감을 줄 알았는데 발갛게 물이 오르고 마른 풀들 사이 연두빛 싹들이 고개 내미네 그러나 멀지 않았어 버들강아지 흰솜털 날리기 전에, 물오른 가지들 이파리 제 모습 다하기 전에, 저 풀들 꽃피어 열매 맺기도 전에, 뿌리째 뽑혀 어디론가 실려가다 생사조차 까마득해지겠지 지나가는 물의 이야기를 모래알 하나, 전해 듣는다 왜라고 물을 시간도 없이 점점 가까워지는 거대한 기계음에 바닥이 흔들린다 모래알갱이들 미친 바람마냥 흩어진다 더러 물 따라 흘러가고 더러 회오리를 일으키며 정신을 잃고 더러 놀람과 분노에 부르르 치를 떤다 동동거린다. 도와주는 손길 하나 없다 모래알 하나, 덜커덩 기계 손에 휩쓸리며 저 깊은..
팔순을 이 년 앞둔 퇴임한 신학교수로 부터 혁명가 예수 이야기를 듣고 왔다 예수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동정녀에게서 나지도 않았고 하느님을 야훼라 부르지도 않았고 예수의 몸은 부활하지도 않았다. 예수가 말한 하느님 나라는 예루살렘이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거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따로 없는 만인이 평등한 세상이다. 그런 나라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맞이하기 위해 투쟁해야한다고 예수는 설법한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현자였고 수없이 많은 혁명가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예수 이전에도 예수 같은 존재는 있었지만 기독교는 그 진실을 덮어둔다. 이스라엘의 민족 신인 야훼는 타민족에게는 배타적이고 무자비한 존재로 작용했기에(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하듯이) 예수는 야훼..
매화 향기를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달콤한, 달큰한, 은은한, 알싸한,달짝지근한, 나른한, 벌꿀냄새, 이렇게 표현력이 부족하다. 마당을 나갈 때마다 코를 자극하는 매화향에 잠시 잠시 쉼호흡을 하긴 했지만 충분히 즐길 시간도 없이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새 벌써 매화가 지고 있다. 오늘 문득 바닥에 떨어진 매화 꽃잎을 보았다. 아, 매화가 지고있네. 갑자기 서글퍼졌다. 어쩌자고 매화나무에 둘러쌓여 살면서 매화향기에 깊이 한 번 취해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봄날을 보낸단 말인가! 물론 봄날 다운 봄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봄 장마라 불러도 좋을 만큼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렸고 온 천지를 뒤덮는 황사에 밖에 나가기도 싫은 날이 며칠 반복되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닌데... 만물의 신들을 너무 경솔히 대한 나를 돌아본다.
한 10년 쯤만에 옛 친구를 만났다. 젊은 시절 한 때 이념을 같이 하고 삶을 같이 했던 친구다. 친구는 그놈의 동지라는 것 때문에 지질이 고생할 걸 막연히 예감하면서도 차마 떨치지 못한 채 결혼의 굴레로 들어갔다. 역시 예감했던 대로 사고만 치는 남편 뒷처리에다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팍팍한 삶이 친구의 등을 휘게 만들었고, 동지니, 이념이니 하는 말은 까마득한 추억의 책갈피로 접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물었다. 기분이 어떻노? 무얼 묻는지 알았지만 담백하게 대답했다. 오랫만에 옛친구를 만나서 반갑고, 어렵게 사는 걸 보니 안타깝고, 그렇지 뭐. 옛날에 그 친구가 즐겨부르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결국 그시절 우리가 추구한 이념이 삶 따로 이념 따로인 것이었구나 싶..
회화나무 그늘 꿈에, 할매가 고향 집 앞 나무를 베어버린 거야 그 나무, 잘 있을까? 걱정이 돼서 죽겠어 너거 할매가 그걸 얼매나 좋아했는데 말도 안 되는 꿈이다 전화선 너머 엄마는 내가 몰랐던 얘기를 들려준다 절대 고향 따윈 그리워지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어느새 남의 집이 된 고향집 앞 나무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말간 아침 해를 걸고 나를 깨우던 수백 년 묵은 회화나무 작은 오남매가 모두 팔을 벌려도 에워쌀 수 없었던 나무 그 그늘 아래서 우리는 자랐다 열 살 누이의 등으로는 성에 안차 울어대던 막내의 콧물이 뒷목을 적실 때쯤 울지마, 울지마 엉덩이를 꼬집다 못해 뿔을 박는 소처럼 동생의 머리를 나무둥치에다 박고는 같이 울어대던 아이 나락 타작하던 날이면 맑은 하늘이 싫어 비를 기원했던 청개구리 떫은 감..
드디어 우리 아들이 실상사 작은학교에 들어갔다.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아들에게 작은학교 살이가 만만한게 아니라고 이야기 해준다. 자기 양말하고 팬티는 스스로 손빨래를 해야하고, 당번이 되면 아침 밥도 해야되는거 알지? 그런 거 잘해. 속으론 언제 잘했나, 되묻지만 넘어가고 또 묻는다. 일주일에 삼일은 농사 짓는 시간이 있는 것도 알제? 나 농사일도 잘하잖아. 겨우 풀 뽑는 것 정도 해놓고 과장이 심하지만 긍정적인 게 부정적인 것보다 낫지 하고 넘어간다. 엄마 안 보고 싶겠나? 엄마는 괜찮은데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걱정이다. 엄마한테 좀 심한 거 아이가? 엄마는 내 없어도 잘 살건데 뭐. 아들 하나만 없는데 집안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물론 우리 아들이 심하게 시끄러운 부류이긴 하지만. 어디가..
우리 고향마을은 특별난 부자도 없고 특별히 가난한 집도 몇집 없는 고만고만한 평민들의 마을이었다. 대부분 집에 일소가 한 마리씩은 있었는데 몇 집만이 일소가 없었다. 다 고만고만해서 누가 못살고 잘사는지조차 구분할 줄 몰랐던 나는 나중에 커서야 일소가 없었던 집이 가난한 집이었다는 걸 알았다. 하나 둘 도시로 떠나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마을을 떠난 집들이 바로 일소가 없는 집들이었다. 마을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모두 소를 몰고 마을 한가운데 모이기 시작한다. 거의 다 모이면 일렬로 들을 향해 출발한다. 학원도 방과후수업도 없던 시절이었고 숙제를 많이 내주면 어른들이 학교에 항의를 했을 뿐 아니라 바쁜 농번기에는 학교에서 알아서 일찍 마쳐주기까지 하던 시절이어서 아이들도 나름 중요한 ..